고향 박 태강새해가 동녘에서 밝아오는 무렵 하나 남은 홍시를 쪼는 까치 뭇 서리 내린 논두렁을 쫓아오는 누렁이 무엇인가 기쁜 일이 생길 것 같고 반가운 손님이 오실 것 같은 예감에 일찍부터 마음 설레였던 곳 그곳이 내 고향이래요 늦은 아침밥 마치고 하나, 둘 양지바른 곳에 흰 무명 바지저고리에 실로 짠 목도리를 하고 어른들은 오순도순 이야기 꽃을 피우고 아이들은 짚으로 만든 공을 차고 팽이를 돌리고 물논 얼음판에 앉은뱅이 스케이트를 타던 곳 그곳이 내 고향이래요 며칠 밤낮을 손꼽으며 설을 기다리고 새로 사온 옷과 신발과 양말을 머리맡에 두고 그만 잠이 들어 일어나 혹시나 머리가 희지 않았나 거울보고 확인하고 찬물 마다 않고 세수하고 새 옷 입고 조상제사 모시고 모두 모여 집집마다 어른 찾아 세배하던 곳 그곳이 내 고향이래요 조리에 오곡밥 얻어와서 먹고 떡, 과일도 먹고 보름달이 뜨는 날 달 앞에 절하며 목적 없이 빌던 그때 달집 태워 콩 볶아 먹으며 밤을 낮같이 뛰어 놀던 그 친구들 그 친구들이 자라오든 그곳 그곳이 나의 고향이래요 밤이면 개구리 노래 진동하고 까랭이(반딧불)불이 들녘마당을 날고 모깃불 피워도 베트공처럼 물어뜯는 모기 때문에 밤잠 설치고 마당 복판에 둔 평상에서 오글아든 참외 오글아든 수박 쪼개 먹으며 (좋은 참외 수박 팔아버림) 동내사람 모두 모여 정을 나누고 이야기 꽃을 피웠던 곳 그곳이 나의 고향이래요 가물면 논에 물푸고 장마지면 물드는 곳 낙동강 가의 작은 마을 소백산맥의 산중이요 논 쌀 농사는 적고 밭 보리농사만 하는 곳 논은 천수답이고 밭은 메기 물만 뿜어도 물에 잠기고 어린 딸아이가 시집갈 때까지 쌀 두말을 못 먹고 시집간다는 곳 그곳이 나의 고향이래요 도둑이 없고 온 동내가 다 내 친척 일가 같은 곳 시장가도 부탁하여 장보아 오고 면사무소에 일은 동내 구장이 다 해오고 편지 다 읽어주는 곳 인정이 넘치고 지나가는 사람 불러 밥 나누어 먹고 수박 쪼개 같이 먹든 정이 듬뿍 담긴 곳 그곳이 나의 고향이래요 팔월 추석은 년중 가장 좋은 날 햇곡식에 쌀밥, 과일, 고기로 배불리고 조상 찾아 산을 타고 성묘하는 곳 당상곡 굽어진 소나무 가지에 그네 메어 빨간 댕기 바람에 날리며 날 듯이 잘 뛰든 아즈매들 그냥 두지 않고 달려들어 뛰어 볼려는 뜨끄머리 총각들 왜 그리도 좋았든고 그 시절 그 낭만이 어린 곳 그곳이 나의 고향이래요 검은 머리는 백발이 성글고 아름답든 얼굴엔 세상의 상처가 서려 밭이랑처럼 골이 패이고 아이가 아비 되고 아이가 어미 되어 그곳이 그리워 그래서 모두 모여 살을 맞대고 옛일 생각하며 웃으며 울며 삶을 느껴보는 곳 그곳이 나의 고향이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