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정희. 정주영. 이병철. 등이 뿌린 씨앗으로 성장한 한국. ▲


● 재벌 프렌들리'의 조건






▲ 윤영신 경제부 차장대우


이명박 대통령이 하려는 '대기업 규제 완화'는 정부 관료나 일반
국민이 생각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 같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한 달여 지나면서 이 대통령의 '비즈니스 프렌들리'의 실체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급진적인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최근 공정
거래위원회와 금융위원회가 대통령에게 보고한 규제완화 방안에
대해 시장에서 '재벌 프렌들리'니 '삼성 특혜설'이니 하는 말이
나올 만큼 파격적인 내용을 담았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이 정도
에 만족해 하지 않았다. 그는 "특정 대기업과 관련있다는 오해를
지나치게 의식하지 말라"며 오히려 공무원들을 꾸짖고 더 과감한
규제완화를 지시했다.


"재벌 밑에서 일했던 대통령이 재벌 세상을 만들려고 하나"라는
비판이 들끓을 법도 한데 국민들은 차분함을 유지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가려는 방향을 일단은 지켜보겠다는 분위기다. 그 이유는
딱 하나다. 친 재벌이니 특혜니 하는 것들을 따지기에는 경제상황
이 너무 좋지 않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일자리 1개라도 더 늘려주
길 바라는 게 많은 국민들의 심정이다.


현재 지구상에는 '못난이'라고 불리는 국가들이 있다. 1인당 국민
소득 2만 달러를 돌파한 후 수년간 3만 달러의 선진국 반열에 오르
지 못한 채 정체상태에 빠진 그리스, 뉴질랜드 같은 나라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기업 투자가 오랜 기간 위축돼 성장엔진이 시들해
졌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겨우 2만 달러 벽을 넘어섰다. 올해는 환율이
높아져 다시 1만 달러 국가로 밀려날 가능성이 높다. 3만 달러의
선진국 문턱 앞에서 발버둥치고 있는 '못난이'들보다도 한참 뒤에
처져 있는 것이 한국경제의 현 주소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은커녕 '못난이' 그룹에 끼기도 전에 주저앉는
게 아닐까 하는 두려운 생각마저 든다. 우리가 지난 10년간 '3만
달러'의 씨앗을 뿌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1970년대부터 IMF외환위기
이전까지 연 평균 10%대에 달했던 설비투자 증가율이 지난 10년간
2~3%대로 추락했다. 성장이 멈춘 정체형 국가들이 겪은 전형적인
코스를 밟고 있는 것이다. 우리 국민이 지금 이 정도로 먹고 사는
것은 과거 박정희, 정주영, 이병철 시대에 뿌려놓은 씨앗 덕분이다.
지난 10년의 공백은 어떤 행태로든 한국경제에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다. 그래서 이명박 정부의 5년이 더더욱 중요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 시기에 우리 경제는 '10년 공백'을 최단기간에 신속히 메우면서
성장 잠재력을 복원시킬 '압축 투자'를 반드시 이뤄내야 하고, 기업
들에게 그 역할이 주어져 있다. 하지만 규제완화나 감세만으로
'압축 투자'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동안 기업들이 국내 투자를 꺼리고 해외로 떠난 이유는 강성(强性)
노조와 고임금, 높은 땅값 등 고(高)비용구조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총선이 끝나고 이 대통령의 방미를 전후해 재벌들은 각종 투자계획을
쏟아낼 것이다. 하지만 과거에도 그랬듯이 정권 초기에 기업들이
'축하 선물 보따리'를 풀 듯 내놓는 투자계획은 오랜 기간 묵혀두었
던 투자이거나 새 정권에 비위를 맞추는 성격의 투자계획일 수 있다.


우리 경제가 '10년 공백'을 만회하려면 일회성, 전시성 투자보다는
'지속적 투자'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선 강성 노조와 고비용 문제를
먼저 풀어내야 한다. 쉽지 않은 숙제이지만 새 정부가 이걸 못하면
"이명박 정부는 규제를 너무 풀어 재벌경영만 부활시켰다"는 소릴
듣게 될지도 모른다.







윤영신 경제부 차장대우 ysyoon@chosun.com

Posted by 김만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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